
나의 행동은 신념에 가까운가, 믿음에 가까운가
최근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난 한 주동안 인후염으로 목이 부어 올라 심리상담은 물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혹시 타인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사람들과의 대면만남을 스스로 차단하고 집에서 홀로 지냈었지요.
그러던 중 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카톡 단체방에는 1남전도회 주관 야유회가 정식으로 공지되고 가길 희망하는 회원들은 참여등록을 하라고 했습니다. 1년에 한번 가는 야유회로서 제가 좋아하는 고군산군도를 가는 프로그램이었으며 또한 기본적으로 부부동반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여러 차례 설명을 들어 잘 알고 있었으며, 당연히 참여해야겠단 마음을 가졌었지요.
사람들이 카톡에 본인과 아내의 이름을 입력하여 속속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픈 상태였고 가는 날까지 낫는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참여하겠다고 올리기가 그렇더군요. 그렇게 다른 회원들의 부부동반 참여소식들을 계속 접하면서 기분이 점점 묘해지더군요.
부부동반이라…
‘나는 혼자가야 하는데…’
‘굳이 혼자갈 필요가 있나..?’
‘다들 부부동반해서 가는데 여자 권사님들이 나를 볼 때 측은지심으로 볼 것 같아…’
사실 그 모임에서 제가 제일 막내이고 다른 분들은 다들 부부동반인데 제일 젊은 사람이 사별해서 아내가 없다는 소식이 퍼지면 은근히 말이 돌기 마련이겠지요. 그들이 내색을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사람들의 표정 파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그걸 놓칠 리도 없고…
갑자기 피곤한 생각이 들면서, 가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안 가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시간을 지나가자 1남전도회 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가벼운 안부인사를 물으며 탐색을 하시는데…
저는 몸 상태가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라고 일단 바닥공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야유회는 못 갈 것 같다고 미리 선수쳤지요. 몸도 그렇고 다들 부부동반하시는데 혼자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라는 농담조의 말로 쐐기를 박았습니다.
순간 당황하던 회장님도 알겠다고 몸 속히 회복하시길 바란다는 인사로 전화통화를 마쳤지요.
큰일을 잘 마친 양 속이 시원해지더군요.
그런데 다음 날부터 마음이 좀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여행 가는 것에 대해선 불편함이 있었지만 가지 않고 회피한 것에 대해서도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 날 딸이 서울에 중요한 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딸을 에스코트해주고 마친 후 함께 바람 쐬고 오자는 계획도 세웠는데, 이것도 영 마뜩치 않았습니다. 그곳에 가지 않기 위해 세운 플랜이었으니 뭔가 잘못을 저지르는 느낌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여러 차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제가 올린 매일성경공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성경 등장인물들의 신념과 믿음이란 측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나의 행동은 신념에 가까울까, 믿음에 가까울까’
이 생각이 들자마자 머리가 점점 정리되고 마음 역시 정리 되더군요.
저의 행동은 완전히 신념은 아니더라도 점차 신념으로 가고 있는 신념화과정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것입니다. 신념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행동에 대해 ‘자신이 옳다‘란 확신구조를 말합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나는 심리적으로 힘듦이나 불편감을 가질 때 특히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높아질 때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형태의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고립감을 싫어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고립감에 빠지는 심리구조, 즉 그런 신념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맨 처음에는 ‘나는 아내와 사별해서 혼자 있는 모습. 특히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다. 특히 사람들의 측은한 표정을 보는 것이 싫다. 이를 피하자.’는 마음이 강했는데, 그 결과는 고립을 자처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지요.
물론 다른 분들은 제가 그 모임엔 불참석하고 다시 정기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그에 대해 전혀 내색하지 않을 것이고 이전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저를 반길 것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이전과는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단초가 더욱 고립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신념이 저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바로 연상이 된 것은 ‘나의 행동은 전혀 믿음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신념과 믿음이 혼재된 상태에서 살고 있으며, 점차 신념이 믿음으로 전환되면서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데 저는 오히려 심리적 촉발에 의해 믿음이 신념에게 지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를 깨닫게 되었을 때 바로 저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에스코트해 주기로 했던 것을 못할 수 있다. 내가 교회 여행과 관련된 결정은 나의 신념이 작동한 잘못되었으며 믿음과는 거리가 있는 결정이었다. 이를 바르게 잡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딸은 자신은 혼자가도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또한 회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행 가는 문이 아직 열려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당연히 열려 있지요”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 고군산군도를 도는 배를 탈 때 필요한 주민등록번호를 문자로 보내고 이번에 필요한 회비를 이체해 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더군요.
고맙기는 제가 매우 고마웠지요. 순식간에 신념에 빠져 공동체의 일에 흠집을 낸 당사자는 저였고 흔쾌히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분은 회장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성경글을 쓰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화두는 신념과 믿음, 신앙과 심리의 조화여부, 이를 통해 말씀과 삶의 일치 여부입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하는 이유는 성경인물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나 자신이, 우리 공동체가 어떠한 상태인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돌아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를 매번 집중하여 제가 글을 쓰긴 하는데, 그럼에도 제 삶에서도 이것들이 흔들리고 있는 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에게 이번 여행은 그저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신념에서 믿음으로 전환하는 것을 배우는 기회를 가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번 토요일에 가는 여행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말씀하시는 믿음의 여행이 더욱 되기를 더욱 소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