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문호인 괴테. 그는 꽤 많은 명언들을 남겼지요.
이번 글은 ‘현재’라는 시간과 관련하여 깊이 사색해볼 만한 명언이 있어 살펴보고자 합니다.
과연 그의 명언 속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우리는 그 명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1. 괴테의 명언 소개
현재에 열중하라, 오직 현재 속에서만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있다.
2. 과거와 미래에 대해
우리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눕니다.
1) 과거
이중 ‘과거’란 ‘이미 지나가 버린, 더 이상 오지 못하는’.
과거에 연연하거나 과거에 묶이면 결코 좋지 않은 것으로
추억하거나 기억할 수는 있어도
묶이지 않도록 벗어나야 할 대상의 시간
으로 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과거의 자산을 잃어버리는 것
과거를 통한 교훈을 잊어버리는 것
으로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하기에 과거란
‘연연해야 할 대상도 아니지만 잊어서도 안될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요.
2)미래
반면에 미래란,
다가올 시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암울하고 불행할 수 있는 시간.
반대로 미리 잘 준비하면 꽃길이 될 수 있는 희망과 행복의 시간.
으로 알려져 있는가 하면,
‘아직 오지 않은. 불확실성이 포함된’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러므로 너무 미래를 위해서만 살아가려 한다면,
현재는 결코 행복하지 못하며 오히려 불행을 자초하는 것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래에 대한 시각은
‘다가올 시간으로서 현재 준비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에 매몰되는 것 또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것’과 같이
어리석음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미래란 다가올 현재로서 미리 준비하는 것의 중요성과 함께,
현재보다는 더 중요하지 않기에 이 또한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 대상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3. 현재에 대해
현재와 관련된 잘 알려진 내용들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현재란
- 과거의 대가로 만들어진 시간
-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간
- 우리의 삶에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실재(實在)적인 시간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과거를 거울 삼되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괴테의 현재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괴테의 명언은 ‘현재에 열중하라, 오직 현재 속에서만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있다.’입니다.
‘카르페 디엠’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결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위의 단어 중 ‘열중하라’라는 말과 ‘영원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특이하게 느껴집니다.
카르페 디엠이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 란 의미라면,
괴테의 ‘열중하라’는 현재란 시간에 ‘집중하라’는 것으로
‘즐기라’에서의 여유로움이 떠오르기 보다는
무언가를 하고자 온 신경을 다 쓰는 듯한 느낌을 받지요.
혹시 이 명언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위해서 좀 더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현재 속에서만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있다”로 보입니다.
이 말을 좀더 제 자신에게 가깝게 느끼기 위해,
“나는 현재 속에서만 영원을 알 수 있다’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쓰고 이 말의 뜻을 느껴 보니,
“나란 사람은 현재란 시간 속에서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고 그 열중함 속에서 ‘영원’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말 뜻은,
“나는 현재에 현재를 계속 이어서 살아가며
지속성 있게 가치로운 것을 만들어갈 때
나는 보다 깊은 영원을 맛볼 수 있다’
로 해석되는 것 같더군요.이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니 괴테가 말하는
시간이란,
현재와 현재가 계속 이어져 가는,
즉 현재란 점들로 이어지는 선이며,
이 선이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괴테 자신도 영원의 일부분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한 부분
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한 사색을 통해,
우주의 시간은 태초의 시간부터 인간이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영원무궁(永遠無窮)하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생명의 기간 동안에도 열중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현재란 시간들로 이루어진 점들의 집합들이 영원의 하나의 짧은 마디조차 만들지 못하고
먼지처럼 사라지는 존재들이 많다.그러하기에 자신의 현재에 집중하므로
영원의 하나의 마디라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살아라.
란 의미로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것이 괴테의 명언의 의미에 해당된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작가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의 현재는 그가 숨이 멈추는 그 어느 날 동시에 멈추었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의 현재의 시간들이 만들어 낸 가치로움이며
그의 가치로움은 영원의 한 부분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이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 꽤 그럴 듯한데 한편으론 뭔가 미진하고 빠뜨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괴테는 ‘영원을 알 수 있다’라고 했지 ‘영원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괴테의 이 말을 재해석하면 인간은 영원의 한 마디도 만들 수 있는
그러한 역량있는 존재이기 보다는
‘영원이 무엇인지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가 해석한 내용보다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하기에 저의 사색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가 말한 ‘영원’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자연스럽게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가 생각나더군요.
괴테의 역작이기도 하며, 주인공 파우스트란 사람이 인간의 삶에서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파우스트에서 그가 생각하는 영원은,
부귀영화도
미인을 통한 쾌락도,
권력도,
자신의 왕국 그 자체도 아니었지요.
그는 그의 왕국에서
그의 백성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했던 것이지요.
즉, ‘타인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베풂’이 파우스트가 찾은 ‘영원’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괴테가 찾아낸 그의 ‘영원’일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대로 자신의 영원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영원을 발견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5. 정리 및 소감
이러한 사색의 과정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생이란
현재란 점으로 이루어진 점들의 집합이며 이것들이 모이면 선이 된다.
하지만, 가치없는 점들이 먼지처럼 사라짐으로 그 사람 역시 소멸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점들로 모여진 선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료하게 빛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것이 영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한, 그것의 밑바탕은 괴테가 말한 바와 같이 현재에 열중하는 것이라고도 정리가 되더군요.
이와 같이 나름 정리하고 나니, 막혔던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재에 열중하지 않으므로 영원은 커녕 먼지와 같이 소멸될 수 있는 것을
괴테의 이 명언이 어느 정도 정신이 번쩍 들게 했으니 말입니다.
그것이 사색의 힘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오늘도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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