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힐링타임

겨울비2_시인 박준, 송태열, 양광모의 ‘겨울비’

겨울비가 내리고 있는 날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인 이 때 내리고 있는 비. 겨울을 떠나려는 계절의 몸부림인지, 겨울을 떠나지 않으려는 계절의 몸부림인지 알 수 없군요. 사람마다 제각각 겨울비를 마주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 겨울비 관련 27개 감정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겨울비, 봄비, 여름비, 가을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비오는 자체를 좋아해왔던 사람입니다. 비오는 날의 낮 혹은 밤, 홀로 우산을 쓰고 동네를 배회하면서 차가운 비를 맞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일종의 버릇처럼 되어왔기에 비는 마치 ‘친한 벗’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겨울비는 계절의 역설이라 그 짜릿함이 더 컸다고 할까요?

하지만 시인들의 시를 찾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겨울비’란 제목의 시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인터넷에 찾은 세 편의 시를 소개하고 이를 감상해 보고자 합니다.

  

1. 박준의 ‘겨울비’

시인 박준의 '겨울비'
시인 박준의 ‘겨울비’

아마도 ‘당신’시인의 가까운 지인인 듯합니다. 화자의 대상이 되지요.

그 대상을 잃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인 듯 하네요.

시 전문에는 지금 내리고 있는 비가 겨울비인지 모르겠으나 제목을 통해 겨울비임을 시사해주고 있네요.

그런데 그 대상 혼자만 사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사망한 듯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유족들의 모임이 있는 그 곳으로 가고 싶지만 정작 몸이 무너져 있기에 그러지 못함을 표현하고 있네요.

그 대상을 잃으면서 몸이 망가졌거나 더 악화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네요.

그는 오늘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귓병이 낫는 것도 아니고 작년 여름 비가 세차게 왔던 것에 대한 추억도 아니라고 하고 있군요. 아마도 작년 여름 비가 많이 왔을 때 ‘당신’과의 추억이 깊은 추억이 있었나 봅니다.

그가 오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약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인은 자신의 몸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시인은 ‘당신’을 잃은 생각과 느낌이 너무 아프기에 그 생각과 느낌을 정지시키려고 물 끓이는 것에 매몰되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차라리 아무 느낌없이 멍해져 있으면 덜 아프다는 것이지요.

몸도 마음도 모두 고통에 짓눌러 있음을 이렇게 표현하였네요. 참으로 아픈 시입니다.

 

 

2. 송태열의 ‘겨울비’

시인 송태열의 '겨울비'

이 시를 읽으면 시인 송태열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창 밖의 빗소리가 내 마음을 건드리니, 그리움이 미움이 되고 미움은 무지개 되어 님의 미소로 행복함이 가득하게 되지요.

그런데 평상시 이 시인의 마음은 외로움과 그리움, 더 나아가 쓸쓸함 마저 있는 것이지요.

이 시인의 겨울비그대의 미소이기에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겨울에 비가 내리는 경우가 적기에 그의 마음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득할 수 밖에 없음을 알려 주고 있네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과 영영 이별한 듯합니다. 그로 인해 그의 마음에 외로움과 그리움, 쓸쓸함이 점점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리학의 이론을 빌면, 나는 그 사람을 상실하여 내 마음에 구멍이 나고 그 구멍난 가슴에 외로움과 그리움, 쓸쓸함이 대신 채워진 것이라고 하지요. 이때 내 마음에 채워지는 것을 ‘내면화’ 혹은 ‘내재화’라고 합니다.

한편으론 그 마음이 참으로 이해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사랑하는 이를 속절없이 떠나 보낸 것도 억울한데, 그 마음 마저 상실의 고통으로 살아야 함은 더욱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군요. 이러한 고통을 숙명으로 생각해야 할 지, 아니면 바꾸어야 할 대상으로 해야 할 지 생각하게 하는 시인 것 같습니다.

 

시인 송태열의 겨울비

3. 양광모의 ‘겨울비 내리는 날에는’

 

양광모의 '겨울비 내리는 날에는'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은 겨울비가 내리면 일상생활에서 일탈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겨울비가 그 시인의 마음을 촉발시키는 단추임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런데 일탈의 내용을 보면, 낯선 여자를 만나 낯선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낯선’이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의 내면 속 무의식 속에 있는 것을 발산하고 싶으며, 그러다가도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일탈의 욕구가 있음에도 그 여자에게 ‘자신은 매우 젠틀하면서도 낭만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바람은 허공에 몸을 누이지 않으며, 꽃은 허공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새는 허공에 둥지를 짓지 않는다고. 다만 우리의 사랑은 허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허공이란 곳언제든지 흩어져 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며,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풋사랑으로 끝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은 그 여자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네요.

별은 허공에 별의 무리를 지으며, 꽃은 허공에 꽃의 무리를 짓고, 새는 허공에 새의 무리를 지음을. 그러니 우리의 사랑도 허공에서부터 무리지어야 함을.

여기서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좋은 결실을 맺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허공에서 풋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여자는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시인은 이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이 시의 내용으로 볼 때, 시인은 짙은 공허감과 허무감을 느끼고 있으면서 정신적으론 매우 방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 현상이 비오는 날 더욱 심하다는 뜻이지요. 공허감과 허무감이란 마음이 구멍났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때에 겨울비가 오면 낯선 여자를 만나서라도 미치도록 그 마음을 채우고 싶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차라리 그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잡아주고 자신은 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4. 정리 및 소감

 겨울비가 내리는 날, ‘겨울비’란 제목이 들어있는 시 세 편을 찾아보았습니다. 무작위로 찾았지만 모두 아픔과 고통을 담고 있는 시네요. 아마도 겨울비를 보면서 기쁨이나 행복을 느끼는 시상이 떠오르는 것은 확률적으로 적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 편의 시를 연결해 보니, 어느 ‘대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시점별 감정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박준님의 ‘겨울비’에서는 대상을 잃어버린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상실의 고통이 너무 크기에 차라리 약물을 끓이는 것에 집중하면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단계, 그 다음의 송태열님의 ‘겨울비’는 대상을 잃어버리고 일정시간이 지난 후 그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변했을 때 그 감정들을 느끼는 단계, 양광모님의 ‘겨울비 내리는 날에는’에서는 그 구멍난 가슴이 너무 커져서 무엇이라도 채우고 싶은 충동에 빠지는 단계로 느껴집니다.

인간은 언젠가 이별을 경험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한 때에 이러한 감정들을 느낄 가능성이 높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마치 숙명인 양 꼭 이와 같은 감정들에 깊게 빠져 힘들어해야 하는가란 측면에서 볼 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마음의 상처이며 상처가 있는 곳엔 치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실의 감정으로 인한 고통이 치유되지 않을 땐, 처음엔 어떤 대상을 잃어버림으로 고통 받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점차 잃어버리는 심리로 힘들어 할 수 있음을 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나름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세 분의 시인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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